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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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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1-03-02 [10:38]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7)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진주 뿐 아니라 경남일원에서 사통팔달인맥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김길수 박사를 소개하기 위해 그와 호형호제하며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어온 이도수 교수와 면담을 가졌다.

 

: 교수님은 경남에서 가장 유명한 마당발인사로 알려진 김길수 박사와 어떤 인연으로 호형호제하는 유대관계를 맺게 되었어요?

 

: 그 분은 내가 근무한 국립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 1회 졸업생인데다 동일구내에 있는 인문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나와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게 되었어요.

 

: 서로 간 연령차이는 어느 정도지요?

 

: 나의 연하 띠 동갑이니 12세 연하지요. 그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의 호위무사 역할을 해주었어요.

 

: 대학에서 호위무사역할을 할 이유가 있었어요?

 

: 내가 대가족에 대한 의무에 눌려 40세까지 중등교직에 있다가 40대에 대학원에 입학하여 초스피드로 석박사 학위를 받아 경상대 영어교육과에 신임교수로 부임했어요. 부임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먼저 그 학과에 부임하여 근무하고 있던 선임교수 5인이 모두 나의 연하였는데 모두 박사과정에 입학도 하지 않았더군요. 나는 중등교직 경력 20년을 합하면 단연 학과에서 최장 교육경력자인데다 박사학위까지 소유했으니 나를 은근히 경계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더군요. 그들은 대부분 그 지방에 연고가 있는 분들이라 나로 하여금 타향의 서러움을 느끼게 하더군요. 그때 김길수 박사가 나의 호위무사 역할을 했어요.

 

: 어떤 식으로 호위무사역할을 하셨는데요?

 

: 그 분이 우리 영어교육과의 1회 졸업생으로 동창회장을 맡고 있었어요. 그런데다가 우리 학과의 대다수 선임교수들이 그 분과 비슷한 연배였어요. 의리의 사나이 김길수 박사가 보기에 최고교육경력에 최고학위를 갖추어 늦게 부임한 내가 은근히 따돌림 당하는 것을 눈치 채고 학과 동창회 자리에서 대갈일성으로 학과 분위기를 바로 잡더군요.

 

: 대갈일성이라니 무슨 말씀으로 학과 분위기를 바로 잡았는데요?

 

: “이제부터 우리끼리 도토리 키 재기를 그만하고 최장교육경력에다 최고학위를 갖추고 우리학과에 새로 부임하신 이도수 교수님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우리학과가 대동단결합시다.”라 하더군요. 의리의 사나이로, 또 유도고단자로 사통팔달인맥의 중심이었기에 그의 말 위력에 압도되어 이의를 달자가 없었어요.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7)  © 더뉴스코리아

 

: 그래도 두 분간에는 뭔가 통하는 것이 있었기에 호위무사 역할을 하지 단순한 띠 동갑이 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위해주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 굳이 말한다면 그와 나 두 사람 간에는 기질적 공통점이 있긴 했어요.

 

: 어떤 기질적 공통점이요?

 

: 대인관계에서 ‘take'보다는 ‘give'를 더 좋아하는 기질이 공통점이라 생각해요. 하나를 받으면 둘을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 서로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어요. 내가 퇴직한지 15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둘은 대구와 진주에서 서로 떨어져 살아왔어도 늘 서로에게 빚진 느낌이라 그걸 갚아야 한다는 심리로 자주 만났어요. 이런 관계를 길연(吉緣)이라고 하지요. 최근에도 무슨 감사패를 수여하겠다면서 진주문화원장실로 오라고 조르는데 못 이겨 결국 다녀왔어요.

 

: 어떤 종류의 감사패인데요?

 

: 내가 이런저런 저술활동을 계속하는데, 책이 좀 팔리면 김길수 박사가 원장으로 있는 진주문화원에 발전기금으로 조금씩 기증하곤 했거든요.

 

: 그 분은 대학에서 정년퇴임 후에 진주문화원장직을 맡고 계시는가 봐요?

 

: 그 분은 워낙 지명도가 높고 일에 대한 추진력이 강하기에 경남교육감 선거에도 등 떠밀려 출마한 적이 있고, 국립경상대학교 총동창회장직도 맡아왔어요. 김길수 박사는 진주시내 택시기사들이 그가 눈에 띄면 충성!”이라며 거수경례를 붙이고 지나가요.

 

: 택시기사들이 왜 그분에게 그처럼 존경심을 표하는데요?

 

: 김길수 박사가 30대말 쯤에, 도로변에 서 있다가 택시에 치어 중상을 입은 불상사가 있었어요. 보통사람이었으면 치명상을 입었을 만큼 큰 사고였는데, 그 분은 유도고단자답게 자동적으로 낙법을 써서 치명상은 입지 않아 몇 주 입원치료를 받았어요. 가해자 택시기사가 사색이 되어 백배사죄하며 배상하겠다고 하는데도 고의성이 없는 사고이니 개의치 말라며 너그러이 용서해주었어요. 그게 진주시내 모든 운전기사들에게 알려져 그 분만 눈에 띄면 거수경례를 붙이고 지나가요.

 

: 그런 대중인기 때문에 교육감 선거에도 등 떠밀려 출마 하셨는가 봐요?

 

: 맞아요. 그러나 교육감선거는 워낙 광역선거라 인구가 월등 많은 마산·창원·진해에 밀리고, 정치이데올로기싸움이라 낙선의 고배를 마셨어요. 그 분은 ROTC장교출신으로 군에 장기 복무했더라면 참모총장까지 오를 만큼 군인 기질이 강했다는데, 제대한 것을 후회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 앞으로 그 분은 어떤 일에 헌신할 것 같아요?

 

: 지금까지 진주시 문화원장을 맡아왔는데, 올해부터 경상남도 각시군 문화원장회의 의장을 맡아 새로운 일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더군요. 그래서 내가 대구의 역사와 진주역사의 공통점을 아울러 무슨 사업을 도모해볼 구상을 하고 있어요.

 

: 어떤 성격의 사업인데요?

 

: 대구역사의 자랑은 극일의 역사이니 진주의 항일역사와 상관관계가 있거든요.

 

: 극일이라면 일본을 이긴 역사라는 말 아닙니까?

 

: 맞아요. 대다수국민들이 모르고 있고, 심지어 대구시민들도 잘 모르고 있는 극일의 역사가 대구에 있었어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우선봉장 사가야 장군이 대구를 침공하기 위해 청도에서 팔조령을 넘어 대구초입 우록계곡에서 조선에 귀순했어요. 귀순한 사가야장군은 충선공이라는 조선군 장교로 임명되고, 그 자손들은 김해김씨로 편입되었어요. 사가야장군의 13세손 김주환이라는 분이 대구도심지역인 대구 중구청장을 역임하셨어요. 그 분이 나와 동갑내기로 일제말기의 대구극일역사의 산증인이라 나와 뜻이 잘 맞아요.

 

: 일제말기대구의 극일역사는 어떤 역사적사건을 두고 하시는 말씀인데요?

 

: 1940년대에 일본상인가문의 나카에 도미주로가 동양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거점을 대구로 정하고 대구읍성 북쪽의 북성로에 미나까이 백화점을 차렸어요. 지하 1, 지상 4층의 흰 벽돌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그 백화점이 한국최초 백화점이었을 뿐 아니라 동양최초 백화점이었어요.

 

: 그 백화점이 결국 한국인에게 빼앗겼겠지요? 그래야 극일의 역사가 되니까요.

 

: 맞아요. 그 거대한 미나까이 백화점에 맞서보겠다며 한국 상인의 표상 개성상인 이근무가 지척거리에 세운 무영당과 경남갑부 이병철이 1km 거리에 세운 삼성상회가 상호 경쟁했어요. 그러나 결국 일본거상 도미주로가 미나까이 백화점을 조선인 종업원 노정주에게 물려주고 일본으로 도망친 것은 그의 외동딸 아나꼬가 노정주를 사랑한 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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