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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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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1-02-26 [14:23]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6)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관훈클럽 총무 등 한국 언론계 요직을 두루 거친 김창기씨의 경북고등
3학년 담임이었던 이도수 교수가 언론계에서 승승장구하는 제자를 지켜보며 저 사람은 한국에서 정도정치를 실현할 사람이다.”라는 기대감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대감이 충족되지 못한데 대한 아쉬운 심정을 기자에게 토로했다.

 

: 교수님의 제자 김창기씨의 언론계에서 최종 직함이 무엇이었습니까?

 

: 조선뉴스프레스의 사장이었어요. 월간조선사장의 명칭이 그렇게 바뀌었어요.

 

: 김창기 사장에 대해 특별한 기대를 건 이유가 무엇이지요?

 

: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특별히 정직하고 올곧아 법조계로 진출할 줄 알았는데 언론계로 가기에 결국 정계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언론계를 택하는가보다 여기며 지켜봤어요.

 

: 그런데, 끝내 정치계에 진출하지 않고 말아 실망 하셨는가 봐요.

 

: 솔직히 좀 실망했어요. 그래서 그들 나이가 50대 말이 되었을 때 가진 반창회에서 내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자네는 정계에 진출할 줄 알았는데... 대구 출신 김용태라는 나의 선배는 자네만큼 언론계에서 명성을 떨치지 못했는데도 집권당 대표 급에 올라 정계를 휘어잡았는데...”라며 아쉬운 심정을 토로했어요.

 

: 그 말에 대한 그분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 “제 능력이 부족해서...”라며 말꼬리를 흐리더군요. 그날은 그걸로 끝냈지만 나는 그 후 그가 말한 정치가의 능력이란 무엇을 뜻할까에 대해 두고두고 되새기면 생각해봤어요.

 

: 그래서 결론이 났어요?

 

: 어지간히 결론이 났어요.

 

: 어떻게요?

 

: 그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이유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경구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 사람만큼 올곧고 정직하고 지식이 풍부하고 정보에 밝은 사람이 없는데, 한국 정치계에는 그것이 필요조건은 되어도 충분조건은 못 된다는 판단 때문에 정계진출을 포기했다고 봅니다.

 

: 충분조건이 무엇인데요?

 

: 국민에게 너무 솔직해도 안 되고, 나라 돈을 떡 주무르듯 하면서도 청백리인양 내비쳐야 하며, 반대 정당과 겉으로는 싸우면서도 뒤로는 야합할 줄도 아는 등 한국정계에서 갖추어야 할 충분조건이 많아요. 김창기 사장이 이런 사술정치(詐術政治)에 적응할 자신이 없어서 아예 정계입신을 포기했다고 봐요.

 

: 그건 그렇고, 교수님은 언론의 사명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가지신 것 같아요.

 

: 잘 봤어요. 내가 언론의 사명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질만한 이유가 있어요.

 

: 특별한 이유라니, 어떤 이유인데요?

 

: 나는 어릴 때부터 신문기자를 환상의 직업이라 생각했어요.

 

: 어떤 동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6.25사변 때 잠시나마 신문가두판매원 노릇을 해봤어요. 당시 나이가 만 10세로 대 구로 피란 가 있었는데 이종형님이 대구 매일신문 기자였어요. 당시 대구 덕산동에 있는 이모 집에 갔더니, 신문 한 아름을 안겨주며 이걸 끼고 길거리에 뛰어다니며 내일 아침 매일신문이라고 외치면 금방 팔릴 거다.”라 하더군요.

 

처음에는 주저되었으나 너무나 잘 팔려 신나게 외쳐대며 돌아다녔는데 시민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빼앗아가다시피 사갔어요. 당시는 전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라디오가 있는 집은 1%도 안 되었기에 밥은 굶어도 신문은 사 볼 정도로 인기가 있었어요. 그래도 당시는 신문을 정기 구독하는 가정은 거의 없었기에 가두판매원이 유일의 메신저였어요.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6)  © 더뉴스코리아

 

: 그래서 신문가두판매원 노릇을 오래 했어요?

 

: 아니오. 며칠 하다가 말았어요. 그 인기 있는 일을 이종동생에게 오래 맡길 리가 없지요. 그러나 신문가두판매소년도 인기가 있었기에 기자인 이종형님이 하늘같이 높게 보였어요. 그로부터 5-6년 후, 고등학생일 때, 문예부 소속으로 당시 대구 매일신문 주필 최석채 선생을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어요.

 

그 분이 강연 중 신문의 사명에 대해 얘기하는 가운데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라고 하면서 사람이 늘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 몸가짐을 바르게 갖듯이 신문을 보며 사회가 올바르게 유지되는지 알게 해준다고 했어요. 그 분이 그로부터 3년 후에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을 씀으로서 정치모리배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고 옥고를 치렀어요. 후일에 법정투쟁을 통해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분의 정론사설이 도화선이 되어 대구2 .28민주화운동이 촉발되었어요.

 

: 그걸 계기로 최석채 선생은 민족영웅이 되었겠네요?

 

: 그럼요. 그 분은 국내언론계의 영웅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언론자유투사 55인중 한 분으로 기록되어있어요. 그걸 보고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성업이라 여기며 나도 나름대로 언론자유를 위해 겁 없이 싸워왔어요.

 

: 어떻게 싸워오셨는데요?

 

: 15년 전 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오바마가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 쓴 자서전 담대한 꿈이라는 책에서 그가 어린 시절에 양부를 따라 인도네시아에 가서 살 때, 메뚜기, 개구리, 뱀 뿐 아니라 개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어요. 마침 그 무렵에 프랑스 주요 언론들이 한국의 개고기식용습관을 두고 야만운운하며 보도하기에 내가 오바마 자서전의 관련구절을 인용해 편파보도라고 항의하자 프랑스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를 그치더군요. 그 몇 년 후에 영국언론들이 또 그 문제를 들고 나와 한국을 폄하보도하기에 외교라인을 통해 중단하도록 조처했어요.

 

: 그러고 보니 교수님은 언론자유투사네요.

 

: 외국 언론들은 타당한 증거를 대며 항의하면 즉각 보도를 중단해요. 최근의 한국 언론들은 거짓보도도 일제히 하면 진실보도라 우기며 뻔뻔스럽게 왜곡보도를 계속하거든요.

 

: 예를 들어 어떤 왜곡보도를 진실보도라 우겼습니까?

 

: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tablet PC를 조작하고 조작된 뉴스를 전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한 기사를 증거로 삼아 정권을 찬탈했어요. 그 후에도 공모세력들이 카르텔을 형성하여 자기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계속 가짜뉴스를 제조해 왔어요. 그래도 중앙언론들은 바위에 대침이라 내가 만만한 지방언론 대구 매일신문사에 대구의 원로 백여 명을 이끌고 항의 방문하여 세계 언론자유투사 최석채 선생의 동상을 사옥 앞에 세워두고 이럴 수 있느냐고 따져 반분을 풀었어요. 매일신문사는 그 여파로 사장 등 요직이 경질되었어요.

 

: 사연을 다 듣고 보니 교수님께서 애제자 김창기 사장에게 가진 기대가 이해가 가네요.

 

: 나의 연하스승 김창기 사장은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수호투사 최석채 선생 못지않은 언론수호의지가 강한 언론인인데 이 좌파정권이 워낙 악질이라 항거했다가는 자살 당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어요.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6)  © 더뉴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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