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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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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1-02-09 [11:08]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8) / 사진=네이버플레이스 업체사진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50여 년 전까지 경남도청소재지였던 진주에서 유명한 맛 집 문산제일염소불고기식당을 창업한 이아이자 여사에 대한 소개를 그 식당 단골고객 이도수 교수로부터 들어본다.   

 

: 교수님께서 진주 제일의 맛 집 문산제일염소불고기식당의 단골고객이 된 사연은 교수님이 식도락가이기 때문이었어요?

 

: 천만에요. 나는 미각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편이라 음식 맛보다 사람 맛을 보고 단골음식점을 정하는 편이거든요. ‘사람 맛이라고 하니 식인종으로 오해하지 말아요. 사람맛이란 인간미를 뜻하니까요.

 

: 문산제일염소불고기식당에서는 어떤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데요?

 

: 그 식당 창업주 이아이자 여사의 눈물겨우면서도 신나는 인생 얘기가 맛깔스럽거든요.

 

: ‘눈물겹다는 표현과 신나는이라는 표현은 상호 모순되는 말인데요?

 

: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인생역전 스토리가 이 아이자 여사에게 있는데 내가 왕년의 신파극 변사 흉내를 내면서 얘기해 볼 테니 들어 보시라우.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에 돈벌이 갔던 조선 동포들이 귀국선에 몸을 싣고 현해탄을 건너 왔던 것이었다. 그중에 한 남자와 세 살짜리 여자아기를 업은 아낙네가 있었으니 그들이 찾아갈 곳 고향은 서부 경남 진양이었다.

 

: 교수님, 그런 식으로 얘기하시면 재미는 있겠지만 시간이 무제한 걸릴 텐데요?

 

: 그렇지요. 그 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훗날 그 유명한 문산제일불고기식당 창업자 이 아이자였어요. 이름이 이색진 것은 일본이름을 우리말로 호적에 올리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어요. 그녀는 가난한 농가에서 학교 문 앞에도 못가보고 일자무식 시골처녀로 자라 일찍 시집가서 사내아이 셋을 내리 낳았는데 불행히도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로 빚만 잔뜩 지어놓고 세상을 뜨고 말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살길이 막막하여 죽을 각오로 남강다리위에서 뛰어내릴 자세를 취하니 어린 자식 셋이 눈에 밟혀 차마 뛰어내리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 진주 중앙시장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대요. 때마침 어떤 골목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더래요. 그녀도 그 줄 되에 서서 관상쟁이 앞에 섰는데 뜻밖에도 거기서 희망의 소리를 듣게 되었대요.

 

: 어떤 희망의 소리를요?

 

: 관상쟁이가 이 여인을 보는 순간, “아주머니. 자살하러 갔다가 왔지요? 아주머니는 음식점 장사를 하면 손님들이 돈 갖다 주려고 줄을 설 텐데, 죽기는 왜 죽어요!” 그 한마디에 희망을 걸고 진주 인근 문산면 사무소 앞에 방 한 칸을 외상 월세로 얻어 면 직원들을 상대로 점심식사를 해대는 식당을 차렸대요. 음식을 맛깔스럽게 하니 면 직원들이 점심 때 뿐 아니라 저녁때에도 친구들을 데려와 방안이 북적대었대요. 그런데 거기서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생겼어요.

 

: 어떤 문제가 생겼는데요?

 

: 20대 젊은 여자가 음식점을 하니 술도 주문하여 밤늦게까지 방안에 죽치고 앉아 갈 줄 모르니 이게 예사 일이 아니었지요. 이 아이자 여사는 이를 어쩌나 고민 끝에 시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 음식장사는 해보니 될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우리 집으로 오셔서 저를 지켜주셔야 어린 것 셋을 키워낼 것 같습니다.”라고 애원했대요. 여러 아들 중에 끝집 며느리가 청상과부가 되어 시어머니를 모시겠다니 반대할 사람이 있을 리 없지요. 그렇게 하여 점점 느는 손님으로 방안이 꽉 차 있는 동안에 시어머니는 손자 셋을 데리고 문산 읍내 골목골목을 다니며 며느리 자랑을 하니, 이 아이자 여사는 1000호 가까운 문산면 소재지에 효부로, 장한 어머니로 널리 소문이 났어요.

 

그 소문이 손님을 더 오게 하여 관상쟁이 말대로 이아이자 여사에게 돈을 주러 줄을 섰대요. 마침내 진양군수가 이 소문을 듣고 적극 도와주었대요. 예비군 훈련병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맡겨보니 수백 명 단위의 음식을 장만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일자무식자가 식대계산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예의주시했는데 한 글자 적어둔 것도 없이 정확한 계산을 하는 것을 보고 이아이자 여사를 천재라고 소문을 퍼뜨렸어요. 그 뿐 아니라 음식을 팔다 남으면 이웃 노인들에게 대접하니 장한 어머니, 효부에다 지역사회에 기부천사로 알려지게 되었어요.

 

: 교수님이 그 음식점의 단골고객이 된 것은 언제부터였어요?

 

: 지금부터 40년 전쯤부터 타향인 진주에서 교수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이미 그 집은 진주에서 제일 유명한 맛 집으로 소문이 나 있었어요. 처음 그 음식점에 갔을 때, 열개가 넘는 방에 손님이 북적대는데 여자 종업원이 5-6명이 교대로 와서 서빙 하더군요. 그런데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업원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 표정이 밝았어요.

 

: 음식 맛보다 사람 맛에 더 관심이 많은 교수님이 그래서 그 집 단골고객이 되었군요.

 

: 맞아요. 그 집 특유의 노린내 안 나는 염소불고기를 개발하기까지의 숨은 얘기와 큰 아들을 식품개발 박사 학위 소유자로 키우는 등 3형제를 반듯하게 교육시킨 비결, 자식들을 다 성장시킨 후에는 함양군수로부터 연을 재료로 한 식품개발을 해달라는 특별요청을 받고 시행착오 끝에 성공하여 함양에 연 재료음식 제조공장을 세워 운영하게 된 사연을 내가 추적했어요.

 

일자무식 아녀자가 식품개발전공박사들도 실패한 연 재료 식품개발에 성공한 CEO로 우뚝 서게 되었으니 이게 기적이 아니고 뭡니까? 요즘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연밥이니 하는 식품이 거의 다 이 여사의 특허품이거든요.

 

: 진주에 있는 맛집 문산제일염소불고기식당은 요즘 누가 운영하지요?

 

: 맏며느리 최양미 여사가 시어머니의 비법을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어요. 장남 하수만 박사는 어머니의 또 다른 염소요리비법을 바탕으로 지리산 아이자 염소엑기스라는 신상품을 불임여성들에게 인기상품으로 알려져 있어요.

 

: 교수님은 교육전문가로서 이 아이자 여사의 이런 기적 같은 업적을 어떻게 해석하세요?

 

: 내가 이아이자 여사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장기간 탐색해 본 결과 이분은 만 명 중 하나 날까 말까 할 정도로 강한 청기를 타고 났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강한 청기를 타고 난 사람은 기()가 뇌에 집중되어 있어 보통사람들보다 월등히 빨리 이치를 깨닫거든요. 무학자가 세상이치를 빨리 깨닫는 데는 구성주의라는 인지심리학이론이 적용되지요.

 

: 구성주의가 어떤 교육이론인데요?

 

: 나의 어머니께서는 그 시대 여성들이 다 그러했듯이 일자무식이었어요. 그런데 한글을 스스로 깨쳐 성경 신구약을 다 읽으셨을 뿐 아니라 내가 쓴 해외여행기를 빠짐없이 다 읽으셨어요. 그런 독학자들에게 구성주의이론이 먹혀들어요. 종부로 유교전통에 익숙하던 어머님이 노년에 천주교인이 되자 칼멜수도원을 갈메기수도원이라고 표현하고, 성당미사 후 성체 나누어 주는 행위를 음복한다고 표현하셨거든요. 이치를 자기식대로 구성하여 기억하는 것을 구성주의라 하지요. 이아이자 여사가 기본셈법도 모르면서 예비군 훈련병 수백 명의 식대를 정확하게 계산한 비법도 구성주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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