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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원로예술가에서 우국지사로 돌변한 노영현 교장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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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1-01-16 [12:39]

▲ [인물포커스] 원로예술가에서 우국지사로 돌변한 노영현 교장 선생님   © 더뉴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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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2금강산으로 불리는 경북도립공원 청송 주왕산에서 퇴직 후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며 창작활동을 해온 노영현 교장님께서 70대 후반에 우국지사로 돌변한 사연을 지인 이도수 교수를 통해 들어본다.

 

: 교수님께서는 노영현 교장선생님과 어떤 인연으로 친분을 쌓게 되었습니까?

 

: 내가 정년퇴임 후 대구·경북의 여러 사회교육원에 출강하다보니 그 수강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초·중등 교장님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게 되었어요. 그분들 중에 특이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분이 노영현 교장님이었어요.

 

▲ [인물포커스] 원로예술가에서 우국지사로 돌변한 노영현 교장 선생님   © 더뉴스코리아

 

: 노영현 교장선생님의 교직 경력을 간단히 소개해주시지요.

 

: 교장선생님은 경상북도 교육청 관내에서 미술교사로 다 년 간 근무하다가 포항이동고등학교 교장 직에서 2009229일자로 정년퇴임하셨어요. 그 후에 청송 주왕산으로 들어가 아지트를 정하고 자연을 벗 삼아 그림 그리기와 사진 촬영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우국지사로 변신하여 맹활약을 해오셨습니다.  

 

: 그 분이 왜 그렇게 태도가 돌변했는지 아십니까?

 

: ,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분은 6.25사변 때 한쪽 팔을 잃었습니다.

 

 

: 전투에 참여해서 전상을 입었다는 말씀입니까?

 

: 아니요. 5세 연상인 내가 6.25당시 만 10세였으니 그 분은 만 5세에 불과했으니까요.

 

▲ [인물포커스] 원로예술가에서 우국지사로 돌변한 노영현 교장 선생님   © 더뉴스코리아

 

 

: 그런데 왜 한쪽 팔을 잃었습니까?

 

: 6.25사변 때는 전쟁터에서 생명을 잃은 수 못지않게 피난 생활 중에 사고를 당해 죽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도 많았어요. 전쟁 발발 3일 만에 수도서울이 적에게 점령당한 때문에 서울을 떠나는 마지막 피난 열차에 몰려드는 피난민들이 기차 내외에도 차창과 차문에 매달리고 심지어 기차 지붕 위에까지 빼곡히 올라탄 가운데 사정없이 달렸으니 도중에 떨어져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였지요. 노영현 교장 가족은 그런 경우와는 달리 공직에 계셨던 아버지는 일찍 피난을 떠나시고 나머지 식구들은 서울에 남아 북한 점령군들에게 당한 잔악행위가 어린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게 되었나 봐요.

 

: 그럼, 노 교장께서 북한 점령군의 만행으로 한쪽 팔을 절단 당했다는 말입니까?

 

: 그건 아니고,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수도 서울이 일시 수복되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다시 철수할 때, 가족들이 재회하여 윗대 조상들의 고향인 경북 북부지역에서 피난살이 할때 왼쪽 팔을 잃었대요.

 

▲ [인물포커스] 원로예술가에서 우국지사로 돌변한 노영현 교장 선생님   © 더뉴스코리아

 

 

: 피난살이하면서 왜 그런 불행을 당했어요?

 

: 6.25전쟁 시, 초전 3개월 만에 남한 땅의 90%를 잃게 되면서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적군과 아군의 시체가 즐비하고 버려진 각종 무기와 실탄이 온 산천에 널려있었어요. 당시는 전국이 민둥산이었는데 땔감을 구하러 산으로 헤매다가 호기심으로 미지의 무기를 건드려 사고사를 당하거나 치명상을 입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노영현 교장선생님도 바로 그런 경우로 왼쪽 팔을 잃어 평생 의수(擬手)로 살아오게 되었어요.

 

: 그런 불구의 몸으로 어떻게 예술 활동을 하실 수 있었어요?

 

: 아버지께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셨기에 김천 직지초등학교, 추풍령초등학교 등으로 전학 다니면서도 그림 그리는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대요. 중 고등은 지방명문사학인 김천 중고등을 졸업하고 대학은 서라벌예술대학을 다녔대요. 대학 졸업 후 모교인 김천고등에서 채용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사립보다는 공립 쪽에 근무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경북도 내 여러 공립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어요.

 

: 그분이 2008년도 8월 말에 정년퇴임하신 후, 경관 좋은 청송 주왕산에 아지트를 정해 근 10년을 예술 활동을 해오시다가 3년 전부터 우국지사로 변신한 속사정을 교수님께서는 아시는 가 봐요.

 

: 알지요. 나와 동병상련의 동지였으니까요.

 

: 어떤 류의 동병상련입니까?

 

: 70년 전에 입었던 전쟁 상처가 다시 도져 불면의 밤을 보내는 병을 같이 앓게 된 동지라는 뜻이지요.

 

▲ [인물포커스] 원로예술가에서 우국지사로 돌변한 노영현 교장 선생님     ©더뉴스코리아

 

: 교수님께서는 노 교장 선생님만큼 심한 전쟁 상처를 입지는 않으셨잖아요.

 

: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70년 전, 어린 가슴에 새겨진 전쟁 상처로 속앓이 하는 점에서는 같아요. 전쟁이 터진지 한 달 반 만인 8월 중순경, 내 고향마을 앞산 고갯길로 하얀 옷을 입은 피난민 대열이 끝없이 이어지더니 우리 동네로 밀려들어 집집마다 연고를 찾아들어가서 짐을 풀더군요. 끝내 우리도 적의 포탄소리를 들으며 고향을 등지고 대구로 향해 피난을 가야했어요. 그러나 피난민 대열 속에 숨어들어 대구로 잠입한 적군 게릴라들이 밤중에 대구 근교 금호강 모래사장에 박격포 진지를 구축하여 한 밤 중에 대구도심에 있는 대통령임시관저로 수십 발을 쏘아 일대소동을 일으켰어요. 그 때문에 대구시민들도 피난을 떠나라는 명이 떨어졌어요. 그날 강변에 주저앉아 펑펑 울던 10세 소년 내 모습이 최근 내 꿈에 나타나 가위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보다 더 어린 가슴에 공산 치하에서 잔학행위를 목격한 노 교장선생님은 오죽하겠어요

 

: 동년배의 다른 예술인들과 지성인들이 수두룩한데 왜 교수님과 노 교장 선생님께서 더 심한 걱정을 하세요?

 

: 임진왜란, 왜군이 국토를 짓밟고 다닐 때, 대다수 선비 족속들은 숨어 버렸어요. 그러나 남명선생의 제자인 곽제우 장군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어요. 요즘 102세의 최고령 원로 김형석 교수님과 90세 중반의 김동길 교수님께서 애끓는 목소리로 우국지심을 표명하시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그 분들이 공산치하에서 겪어봤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의 표명이지요. 6.25사변 때 북한군을 물리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분이 누군지 알아요? 김형석 교수님과 같이 북한에서 공산학정을 겪고 월남한 백선엽 장군이었어요.

 

: 교수님께서 노영현 교장님과 의기투합된 배경은 이해하겠는데, 세부전공이 서로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하여 접점을 찾습니까?

 

: 좋은 질문입니다. 나는 글쓰기는 즐기는데 색맹에다 형태지각저능이라 노영현 교장님의 예술품을 감별할 능력이 없어요. 반면에 노 교장선생님께서는 미술작가이자 사진작가이면서 글 쓰는 능력 면에서도 저를 위협하고 있어요. 요즘 포항에서 발행하는 경상매일신문에 고정 칼럼니스트로 날카로운 시사평론을 실어 문인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과시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두 사람이 기분 좋게 만날 접점이 있어요.

 

: 어떤 접점인데요?

 

: 좌파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부르짖는 "Hell Chosun"대신에 우리는 "Heaven Korea"를 부르짖으며 손을 맞잡지요. 한국전쟁 때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원조를 받아 나라를 겨우지켰는데, 이제 세계 경제대국 10위안에 들어 남의 나라를 도와주게 되었으니 어깨춤이 절로 나지요. 모든 점에서 나를 능가하는 노영현 교장님은 또 한분의 나의 연하스승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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