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영남선비정신의 진정한 계승자 조대환 (전)청와대 민정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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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1-01-06 [10:21]

 

▲ 조대환 변호사  © 더뉴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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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대구 출신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법인 대오의 고문으로 일하는 조대환 변호사의 인물평을 위해 경북고등 재학 중 은사였던 이도수 교수를 인터뷰했다.

 

: 교수님은 경북고등 재직 시에 걸출한 인재를 많이 배출하고 졸업 후에도 아낌없는 도움을 많이 주신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조 변호사에게는 어떤 도움을 주셨습니까?

 

: 부끄럽게도 조 변호사에게는 도움을 주기보다 내가 도리어 도움을 받은걸요.

 

: 아니, 제자들에게 도움을 청할 분이 아닐 것 같은데 무슨 도움을 받으셨어요?

 

: 실은 내가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고, 그가 나를 도와준 사실을 내가 알지 못한 채 상당 기간 지냈어요.

 

: 교수님, 스무고개 하듯 그렇게 조금씩 흘리지 마시고 자초지종을 다 얘기해주시지요.

 

: 그러지요. 3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될 무렵에 내가 엄청 큰 사고를 쳤어요. 그때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조대환 제자가 알아서 무마해주었기에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어요.

 

: 교수님이 무슨 큰 사고를 치셨다니요?

 

: 내가 김재수 장관이 언론농단으로 수난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좌파들이 언론과 카르텔을 형성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모함으로 탄핵한 내막을 누구보다 일찍 간파하고 있었어요. 그때 내가 하도 울화가 터져 전국 최초로 언론기관에 항의 방문을 감행했어요. 그 언론기관이 어디냐 하면 대구의 유서 깊은 천주교 재단에서 설립한 매일신문사였어요. 당시 사회교육원에서 나의 강의를 듣는 대구 시내 원로들 수십 명을 이끌고 매일신문사를 항의 방문해서 발칵 뒤집어 놓았어요. 그런데 그 파장이 예상보다 커서 천주교 신부인 신문사 사장이 파면되고 편집국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대거 경질되었어요. 그 엄청난 사건이 정규 언론에는 일체 보도되지 않았는데 SNS를 통해 전국에 유포되었어요. 그런데 그 사건의 주모자인 나에게 형사고발이나 민간사찰 같은 후폭풍이 없이 무사히 넘어간 데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었던 조대환 제자의 배려가 있었음을 2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 2년 후에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 그 사건 이후에 대구 경찰서 J경사라는 자가 나에게 수시로 안부 묻는 듯한 전화를 걸어 오기에 왜 자꾸 귀찮게 구느냐고 항의했어요. 그랬더니 그 경관이 아주 공손하게 교수님, 오해 마세요. 이도수 교수님을 잘 보호하라는 고위층의 지시가 있었으니 교수님은 행복하십니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더군요.

 

: 그 고위층이 청와대 조대환 민정수석이었습니까?

 

: 모르겠어요. 실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날 때까지 조대환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독서광인 내가 서점에서 구입해온 신간서적 <남 듬 길>을 읽고 감 명을 받아 저자인 조대환에게 직접 전화통화를 함으로서 그가 나와 사제 간이며 그가 나 의 신문사 항의 방문 사실을 보고 받고 무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 교수님께서는 제자들 이름 기억과 신상파악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분으로 유명한데, 왜 그 걸출한 제자를 기억 못하셨어요?

 

: 실은 내가 경북고등 근무 말년에 마음이 상당히 떠서 학생들에게 좀 소홀했어요. 왜냐하면 경북고등에서 3년 연거푸 3학년 담임에다 대학입시에 가장 중요한 과목인 영어를 맡다보니 과분한 네임벨루가 붙어 그 중압감을 감당하기 어렵더군요.

 

: 과분한 네임벨루란 어떤 것이었어요?

 

: ‘한강이남에서 영어 실력 1인자라느니, ‘대학 진학 지도의 최고 베테랑이라는 식의 허황된 명망 말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허황된 명망에 우쭐한 생각이 들어 들뜨기도 했어요. 그러나 대학 재학 중에 선두를 다투던 친구들이 하나 둘 대학 교수로 진출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입시 지옥인 경북고등에 갇혀있으면 낙오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경북고등에서 내가 고3을 맡았던 마지막 해의 졸업생들에게는 나의 관심이 크게 줄었어요. 조대환 제자가 그 마지막해의 졸업생이었으니 내가 모를 수밖에요.   

 

▲ [인물포커스] 영남선비정신의 진정한 계승자 조대환 (전)청와대 민정수석 / 사진=남듬길 책 표지  © 더뉴스코리아

 

: 교수님에게 감동을 준 조대환 변호사의 저서가 어떤 내용의 책인데요?

 

: <남 듬 길>이라는 5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저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기는 어려워요. 저자가 박근혜 정부와 그 후 과도정부 시절에 권력의 핵심부에 있으면서 지켜본 한국정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앞으로 어떤 행보를 취해야 되겠다는 결의를 다진 내용이라 할 수 있겠어요. 내가 그 책을 숙독하면서 특히 감명 받은 것은 경박하고 하루살이 같은 우리나라 정치계에서 우리 문화의 자랑인 선비 정신을 고수하고 있는 묵직한 인사가 있다는 데 대해 흐뭇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는 조대환이라는 그 책 저자이름 대신에 조대인이라고 바꾸어 부르곤 해요.

 

: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시죠?

 

: 그럼, 실존인물을 예를 들어 비교하면서 설명하지요. 조대환과 조국은 같은 창령조씨 후예로 두 사람이 공히 서울대학교 법대 출신 엘리트지요.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되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의 공통조상인 남명 조식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실천하는 사람은 둘 중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 그야 물론 조대환 변호사이지요.

 

: 그럼 조대환이라는 사람과 조국이라는 사람 간 언행의 근본차이가 뭐라 생각하세요?

 

: 글쎄요.

 

: 인간 조대환은 옳음을 추구한 반면에, 인간 조국은 이익만 추구했지요. 맹자의 대장부론에서 군자는 의()을 추구하고, 소인은 이()을 추구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한 분은 군자의 도를 실천한 반면에, 다른 한 인간은 소인배의 행동거지를 취했지요.

 

: 두 분이 공통적으로 한국 선비의 대표인사인 남명 선생의 후예로서 탁월한 두뇌를 타고난 인물인데 왜 서로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세요?

 

: 그야 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 중에도 대가족의 공통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자기개인의 이익만 챙기는 얌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처럼 대의를 앞세우는 사람은 대인, 소아를 앞세우는 사람은 소인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내가 조대환이 비록 제자이지만 그의 군자다운 풍모를 보고 조대인이라 칭해요. 반면에 얌체인간 조국은 이름은 거룩하게 나라 국()’자로 포장해놓고 실제로는 제 가족의 이익만을 챙기는 소인배 짓을 일삼았기에 전 국민들의 공분을 샀지요.  

 

: 그래서 교수님께서는 조대환 변호사에 대한 인물총평을 영남선비정신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하셨군요.

 

: 그래요. 그런 뜻에서 조대환 변호사가 올곧은 선비정신을 실천하여 소아적 정치에 찌든 우리나라에 새바람을 일으켜주기를 기대해봅니다. 인간 조대환은 영남선비의 상징인 남명 선생의 얼을 계승하는 인물이자 불초 이도수에게는 청출어람의 본보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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