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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칼럼] 외교부, 미국이 건네준 비밀해제 문서 많이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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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0-12-29 [13:44]

글라이스틴 보고서(1980.5.29.) 

 

▲ 지만원 박사     ©더뉴스코리아

 

 

광주침투 임무를 띤 북한인 1명이 생포되었다이렇게 임무를 띄고 광주에 온 북한 침투자들이 매스컴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 의미는 불순분자들과 공산당 선동자들이 광주사태 전반을 배후조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외교부, 기밀문서 민감한 부분 제외시키고 영양가 없는 자료만 공개

 

1980.5.29. 당시 주한미대사 글라이스틴의 레포트는 미국무부 홈페이지에 떠 있다. 이는 기밀해제하여 한국정부에 내주었다는 보고서들 중 하나이지만 한국외교부는 이 리포트를 공개하지 않았다. 2020.5.15. 뉴시스의 보도 제목은 , 정부에 5·18 기밀문서 전달추가 문서 확보 첫 발”-43, 140쪽 분량발포 행위 관련 자료 포함 안 돼로 뽑혀있었다.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00515/101062940/1

 

43거의 문서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www.5.18archives.go.kr)-참여마당-자료실 국가기록원(www.archives.go.kr)-기관소개-기록물보유현황-최근수집기록물에 게시돼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5.18측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문서는 게시돼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 팀이 미국무부 홈페이에 찾아가 확인해 보니 5.18측에 매우 불리한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외교부가 받은 문서는 43140쪽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다. 그 중 하나가 위 글라이스틴 보고서이고 아래와 같은 민감한 내용의 보고서다.

 

 

5.18측에 불리한 보고서들

 

 

 

 

< 위 내용에 대한 원문 타이핑기록과 번역문 > 

미국 국무부의 5.18 폭동 보고서 007089 

 

MARTIAL LAW COMMAND (MLC) ISSUED ON MAY 31 A "COMPREHENSIVE REPORT" ON THE KWANGJU INSURRECTIDN (REF). SEOUL DAILIES MAY 31 CARRIED SUMMARIES PLUS THE FULL 5,000 -WORD TEXT. HEADLINES FEATURED OFFICIAL DEATH-TOLL FIGURES: 144 CIVILIANS, 22 SOLDIERS, AND 4 POLICEMEN KILLED.

 

THRUST OF THE REPORT WAS THAT RIOT WAS PROFESSIONALLY-INSTIGATED AND ATTAINED PROPORTIONS OF "MASS HYSTERIA"

 

IT ALLEGED THAT RIOT WAS SUBDUED WITH MINIMAL BLOODSHED, BECAUSE OF RESOURCEFULNESS AND SELF-RESTRAINT OF ROK ARMY TROOPS.

 

계엄사령부는 531일 광주 반란군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의 일간지는 일제히 5천 단어로 된 전문과 요약을 보도했다. 특집기사로 보도된 공식 사망자 현황은 민간인 144, 군인 22, 그리고 경찰 4명이다. 기사에서 강조된 점은 폭동이 전문적으로 선동되어 "군중 흥분 소동"을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폭동은 육군의 충분한 병력자원과 군인들의 자제력에 힘입어 최소한의 유혈로 진압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THF RIOT WAS THE WORK OF COMMUNIST AGENTS AND THE FOLLOWERS OF KIM DAE-JUNG (M-R: KIM TAE CHUNG), ACCORDING TO THE MLC ACCOUNT. TWO REINSTATED STUDENTS (I.E. FORMER POLITICAL OFFENDERS PERMITTED TO RETURN TO COLLEGE THE BEGINNING OF THE PRESENT SEMESTER), ONE EACH FROM CHOSUN AND CHONNAM UNIVERSITIES AND BOTH PAID KDJ LOYALISTS, ARE NAMED AS THE PRINCIPAL AGITATORS BEHIND THE ORIGINAL STUDENT PROTESTS.

 

폭동은 공산주의자인 간첩과 김대중의 추종자들이 일으킨 것이었다. 이번 학생소요를 배후에서 조종한 주동자로 지목된 사람은 반체제 선동가로서 징계를 받았다가 이번 학기에 복학이 허용된 조선대와 전남대의 복학생 2명으로서 모두 김대중의 열성 지지자였다.

 

THE FIRST ACT OF THESE ANO OTHER "INSTIGATORS" WAS TO FAN THESE STUDENT PROTESTS INTO A GENERAL INSURRECTION. THIS THEY DID BY FABRICATING AND SPREADING RUMORS. THE OFFICIAL ACCOUNT ADMITS THAT "YOUNG SOLDIERS... DEALT ROUGHLY WITH SOME STUDENTS," BUT SAYS THAT THE ATROCITY RUMORS WHICH THEN QUICKLY SPREAD WERE "INCOMPREHENSIBLE TO MEN OF REASON. " NEVERTHELESS THE RUMORS APPARENTLY CARRIED ENOUGH FORCE TO DRAW IN THE MASS OF CITIZENS. AND, WITHIN 24 HOURS, "MASS HYSTERIA PREVAILED" IN KWANGJU.

 

이 두 복학생과 여타 "선동자"들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이 학생소요를 전체적 시민반란으로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언비어를 조작 및 유포하는 방법을 통하여 이를 실행하였다. 공식 수사에서 확인된 유언비어로는 "젊은 병사들이 학생들을 거칠게 다루었다"는 것이었으며, 당시 가장 신속히 유포되었던 악성 유언비어는 "인간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짓"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언비어들은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에게 유포되어 매우 큰 악영향을 미쳤으며, 광주에는 불과 24시간 이내에 "군중 흥분 소동이 만연하게" 되었다.

 

THE INVOLVEMENT OF THE CITY'S MASSES IS NOT DENIED, AND VIGNETTES OF THE RIOT LEADERS--"A MOTHER-OF-PEARL CARVER, CHIEF OF THE STRIKE FORCE, A TRUCK DRIVER, CHIEF OF THE SITUATION ROOM, ETC. -- CONVEY RATHER DRAMATICALLY THE SENSE OF A PLEBEIAN UPRISING. THERE IS EVEN MENTION OF A 33-YEAR-OLD ARMY RESERVE CAPTAIN CONDUCTING AD HOC SQUAD-TACTICS TRAINING IN THE YMCA. THERE IS A DISTINCTION DRAWN HOWEVER BETWEEN THE HIGHLY SUGGESTIBLE CITIZENRY AND THE "HARD CORE" OF "IMPURE ELEMENTS" WHO INSISTED ON A BLOODY FIGHT TO THE END.

 

시민 군중의 개입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폭동 주동자들에게 이용당한 사람들은 "자개공, 노조위원장, 트럭운전사, 상황실장" 등등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이 폭동이 하층민들의 반란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YMCA에서는 특수전 훈련을 담당하던 33세의 예비역 육군 대위에 대한 진술도 있다. 한눈에 알 수 있는 일반 군중과는 달리 끝까지 유혈 전투를 주장하던 "불순분자""핵심세력"이 별도로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CREDIT FOR CASUALTIES BEING NO HIGHER THAN THEY WERE IN KWANGJU IS GIVEN ENTIRELY TO THE TROOPS, WHO "RESTRAINED THEMSELVcS FROM USING THEIR RIGHT OF SELF DEFENSE." THEIR RESOURCEFULNESS IS PRAISED AS WELL: AWARE THAT RIOTERS HAD MINED THE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MARTIAL LAW TROOPS INFILTRATED... THE BUILDING AND DEFUSED THE CHARGES, " THUS PREVENTING A MASSIVE BLAST WITH MANY CASUALTIES WHEN KWANGJU WAS RETAKEN. FINALLY, SECURITY FORCES ARE CREDITED WITH GREAT GENEROSITY OF SPIRIT IN R'ELEASING WITH ADMONITIONS 1,010 OF THE 1,740 PERSONS TAKEN INTO CUSTODY DURING AND AFTER THE INSURRECTION.

 

광주에서의 사망자 수가 예상보다 적었던 것은 전적으로 자위권 발동을 끝까지 자제한 계엄군의 덕분이었다. 군의 충분한 병력 배치도 또한 칭찬받아야 한다. 폭도들은 도청에 대량의 폭약을 설치하였는데, 계엄군은 목숨을 걸고 도청에 잠입하여 폭약의 뇌관을 제거함으로써 도청 재진입 작전시 대형 폭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 끝으로 계엄군은 폭동기간 중에 체포한 1,740명 중 1,010명을 훈방함으로써 관용정신을 베풀어 인정을 받았다.

 

THE REACTION OF KOREANS WE HAVE SPOKEN TO, INCLUDING THOSE NORMALLY CONSERVATIVE AND PRO GOVERNMENT HAS BEEN SKEPTICAL. THE OFFICIAL REPORT DENIES THE TALES OF TROOP ATROCITIES ON MAY 18 WHICH BY NOW MOST KOREANS HAVE HEARD AND SEEM TO BELIEVE.

 

 

THE REPORT DOES NOT REALLY ACCOUNT FOR THE PHENOMENON OF THE CITIZENS' JOINING THE STUDENTS; LURID RUMORS ARE A FACT OF LIFE IN KOREA AND THEY DO NOT NORMALlY RESULT IN MASS HYSTERICS.

 

THE REPORT GIVES A CASUALTY COUNT WHICH MOST TO WHOM WE TALK CONSIDER VERY LOW. IT CONTAINS SOME INTERESTING AND COLORFUL DETAILS, SUCH AS THE INFILTRATORS' DISARMING THE EXPLOSIVES. BUT IT IS NOT LIKELY TO GAIN WIDESPREAD ACCEPTANCE AS THE LAST WORD ON KWANGJU. GLEYSTEEN

 

우리가 접촉한 한국인들은 보수적이고 친정부적인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식보고서에는 계엄군의 잔혹행위에 대하여 부정하고 있지만 현재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고, 또 믿는 것 같다. 보고서는 실제로 시민들이 학생들과 합류하는 현상에 대하여 해명하지 않고 있다. 끔찍한 유언비어들이 한국인들에게는 사실이 되었으나 군중 흥분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보고서의 희생자 수는 매우 적은 수라고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계엄군이 도청에 잠입하여 폭약을 해체한 사실 등 흥미롭고 화려한 기록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광주사태의 중요한 마지막 언급으로서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다.

                                                           글라이스틴

 

 

2020. 12.28.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뉴스코리아>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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