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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못난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탈바꿈해 창공을 비상(飛翔)하는 이도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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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0-12-28 [12:55]

 

▲ [인물포커스] '못난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탈바꿈해 창공을 비상(飛翔)하는 이도수 박사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이도수 박사에 대한 소개는 그가 금년 초, 80세에 쓴 자서전적 회고록 나는 스토커교수였에서 발췌 해 기록했음을 밝혀둔다. 

 

이도수 박사는 1940(호적상 1941년생) 경상북도 칠곡군 칠곡면 도남동(현 대구시 북구 도남동)에서 가난한 유교가문의 11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취학 전인 5세 때, 40리 떨어진 외가 순천박씨 집성촌에서 마을훈장 노릇을 해 오신 외조부께서 손수 쓰신 천자문 책을 갖고 오시어 한 달 간 기거하시면서 가르치셨다. 그러나 정작 해방이 되고 초등교육이 실시되었을 때는 부모님들이 학교 교육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농사일 거드는 것을 더 중시한 때문에 결석이 잦아 사뭇 열등생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초등6년 간 학급에서 등교 거리가 가장 먼 두메산골 출신인데다 핫바지에 고무신 차림의 못난 오리 새끼 신세였다. 그러던 중 6학년 때, 신의주 출신으로 월남한 호랑이 담임선생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그 호랑이 담임선생은 늘 교실 맨 뒤에 앉아 멍청히 공상에 잠긴 촌아이 이도수를 다른 선생님들처럼 예외적인 존재로 내버려두지 않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답을 곧잘 하는 데 놀랐다. 특히 짧은 글짓기를 시키면 번번이 기상천외의 답을 하여 놀라게 하자 글짓기 척척박사 이도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 별명으로 기가 살아 두메산골 핫바지 소년 이도수는 차츰 독서광이 되고 평생 글쓰기를 즐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 은인 담임선생님 덕으로 대구 계성중학교에 입학했으나 가난 때문에 중등학교 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는 학비 부담이 적고 취직이 보장되는 대구사범학교에 지원하라는 부모님의 소원대로 601의 경쟁에서 학과 시험에 통과했으나 색맹 판정을 받아 탈락해 크게 실망했다 

 

도리 없이 다시 계성중학교와 동일계인 계성고등학교에 입학 성적 우수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입학했다. 대학 입학 때도 교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색맹이 탈락 사유가 되지 않는 경북대학교 사범대 영어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중등 교직에 발령 받아 15년 간 5개 학교를 전전하면서 대가족과 핵가족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만 40세인 때에 대학 동기생 중 제일 일찍 대학원을 나와 대학교수직에 진출한 친구에게 멱살 잡히다시피 끌려가 경남의 모 사립대학의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독일 병정처럼 독한 마음으로 15세 연하 동기생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기록적인 최단기간에 석·박사 학위를 받아 국립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국립 경상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신임 교수로 부임하여 선임 교수들의 면면을 둘러본 즉, 박사학위 소유자는 이도수 교수 자신이 유일했다. 나이가 많게는 15, 적게는 2세 연하들인 것으로 보아 부, 모 덕으로 교수직에 오른 사람이 대다수이고 이 교수처럼 대가족 부양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온 사람은 없음을 알게 되었다. 40대 중반에 박사 학위를 받아 신임 교수로 부임한 이도수 교수에게 자극 받은 다른 선임 교수들이 뒤늦게 박사 과정에 입학하여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도수 교수는 이 틈을 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 재학 시절에 한국의 페스탈로치라는 칭호로 추앙받아온 은사 이규동 교수님 흉내를 내면서 여유 있는 대학교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규동 교수님 흉내란 다름 아니라 제자들에 대한 개별관심과 무한 밀착 지도 방식이었다. 강의 첫 시간부터 수강자 전원의 이름을 불러 개별 질문을 던질 수 있을 정도였고, 어떤 제자를 어디서 만나든 근황을 물으면서 관심을 표명하는 태도는 가히 스토커 수준이었다. 이도수 교수가 80세 때 쓴 인생 회고록 나는 스토커교수였다는 대학은사님 흉내를 내며 살아온 이야기가 주 내용을 이룬다 

 

이도수 교수가 교직 말년에 이를수록 더욱 더 가열 찬 노력을 계속한 이면에는 약점 호도 강박증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못난 오리새끼 신세, 대학 교수로 진출하기 위해 친구의 도움을 받아 급조한 누더기 학력 등이 그의 심리바탕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는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해야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늘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 교수가 퇴직하기 직전 학생들에 의한 강의평가제가 실시되었을 때, 최선두를 달렸을 뿐 아니라 최다 저술자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도수 교수의 약점호도강박증은 정년퇴임 후에도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퇴직 후에도 매년 한권 정도 신간서적을 펴냈다.

 

그의 대표작 세 권이 전부 퇴임하던 해와 퇴임 후에 펴낸 것이다. 퇴임하던 해에 펴낸 영문에세이 Encountering Eastern & Western Cultures는 영어권 6개국에 길게는 1, 짧게는 몇 달 간 체류하면서 그곳 문화와 한국문화의 상이점과 공통점을 논한 내용이다. 이 교수는 이 책 내용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뉴욕 주의 Mon'tClaire State University에 설립된 아동철학연구소(IAPC)에 교환 교수로 파견되어 그 곳에서 세계적인 석학들과 토론을 거쳐 내용 검증을 받았다. 마침내 이 연구소 소장이자 아동 철학 창시자인 Matthew Lipman 박사가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하여 자기의 수제자이자 Columbia University철학교육과 부교수인 Dr. Megan Laverty에게 그 대학 철학교육과 학생들의 토론 교재로 채택하도록 권유하였다. Laverty 교수는 3쪽에 달하는 이 책 추천서에 이 책은 철학과 학생들을 위한 토론 교재로 뿐 아니라 해외 체류 한국 교포들의 교양 도서로 인기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요구에 따라 그 영문에세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 동서양문화의 만남이다. 이어 2013년에 이교수가 펴낸 한반도발 네오르네상스1년 만에 6쇄에 이르고 문화 관련도서 베스트셀러대열에 들어 천주교방송, KTVII채널에 내용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 책이 마침내 수원대학교의 교양 과목 교재로 채택될 만큼 인기가 치솟을 즈음에 좌파작가들이 일으킨 헬 조선역풍에 부딪쳐 베스트셀러 대열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도수 교수의 저서를 통해 글로벌 문화 소개를 받은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대구와 경남·북 여러 사회교육원에 10여 년 간 출강했다. 그의 명성이 지역을 뛰어넘어 중앙에까지 알려져 중앙의 유수 U-tube방송 고성국tv에 초대되어 박근혜 대통령탄핵 은 5천만집단최면사건이라는 주장을 폄으로서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되면서 손상대tv, 뉴스타운tv, 주옥선tv, 이화영tv등으로부터도 출연요청을 받았다.

 

이도수교수가 어느덧 80고개를 넘어섰건만 그의 심리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약점호도강박증은 여전히 그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듯 세상사를 뒷짐 지고 방관하지는 않을 태세다. 못난 오리새끼에서 탈바꿈하여 잘난 백조처럼 창공을 비상하더니 이제 불사조가 될 꿈을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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