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 흙 속의 진주가 스스로 흙을 헤치고 나와 빛을 발하는 '연하스승 박성택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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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0-12-23 [11:52]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 흙 속의 진주가 스스로 흙을 헤치고 나와 빛을 발하는 '연하스승 박성택 사장' / 사진=박성택 사장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이도수 교수가 연하스승 박성택 사장에 대해 쓴 글을 살펴보자.

 

아래는 이 교수가 연하스승 박성택 사장에 대해 쓴 글을 옮긴다.

 

내가 40년 교직생활을 끝내고 정년퇴임을 맞을 즈음, 40년 전 교직생활 초년에 근무한 산간벽지학교에서 사제 인연을 맺은 천병모라는 제자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대구에 있는 미군부대 Camp Walker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얼떨결에 응하겠다고 답했지만 그가 40년 만에 나를 찾는 의도가 무엇일까 몹시 궁금했다. 나의 교직 초임학교 산성분교는 25세 때 대학을 졸업하고 한 달 만인 4월초에 부임해서 11개월간 천방지축열정을 쏟다가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매정하게 떠난 곳이었다.

 

나는 시집가서 첫 애를 낳아두고 매정하게 가출한 새댁 같은 죄책감으로 그 후 그 지역에 얼씬도 않았다. 그런 내가 40년 전 제자의 만남 제안에 선뜻 응한 것은 그가 만남장소로 정한 Camp Walke식당출입증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 식당출입증은 대구에서도 초특급 VIP들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인데 그 벽지학교출신이 그런 뜻 밖의 장소에서 나를 만나자는 제안을 받는 순간 내가 벽지학교에서 노래처럼 입에 올렸던 ‘흙 속의 진주’가 드디어 나타났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약속장소 Camp Walker 식당에는 천병모 제자 외에 몇 사람의 동기생이 동석했다.

 

그들과 마주 앉기 바쁘게 내가 “이곳 출입증을 누가 가졌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이에 천병모 제자가 “선생님, 제가 육군 3사관학교 출신인데 카투사 대구 지역 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최근에 제대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이 40년 만에 나를 찾은 의도를 즉각 알아차렸다. 그건 다름 아니라 내가 40년 전에 그들을 가르칠 때 늘 노래처럼 한 말 “흙 속의 진주”가 흙을 헤치고 세상에 나온 것을 나에게 자랑해보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얘기가 너무 비약한 것 같아 40년 전 벽지학교산성분교의 교육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좀 얘기해야겠다. 내가 경북사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1965년 4월초에 경북 군위군 산성면 산성분교로 발령받아 갔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덩그런 산 위에 판자교실 3칸이 서있고 그 옆에 붙은 좁은 교무실에는 교감 책상을 마주한 평교사 책상이 4개 놓여있었다. 신 학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난 4월 초까지 비어있던 말단 좌석이 나의 자리라며 교무 주임이 안내 해주면서 내가 맡을 교과목을 알려주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전교생 영어 담당 외에도 1, 2, 3학년 물상, 2-3학년 체육, 1학년 미술을 맡아야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선임 교사들도 전공과목 외에 한 두 과목씩 분담하는 것이 분교에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지만, 알고 보니 가르치기 어려운 과목들을 서로 미루다가 초임 교사인 나에게 떠맡긴 것이었다. 울화가 치밀어 당장 사직서를 던지고 대구 시내 사립 학교에 구직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신임 교사 부임 인사를 시키기 위해 전교생을 운동장에 집합시켜 두었다며 교감이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재촉했다. 

 

막상 운동장에 나가 단상에서 130여명 밖에 안 되는 전교생을 내려다보는 순간, 내 마음이 달라졌다. 그 시골 애들의 초라한 차림과 순진무구한 모습에서 나의 초중등 시절의 모습이 상기되면서 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인재가 있을 터이니 그걸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다음 날부터 한국의 페스탈로치라는 칭호로 존경받은 대학시절 은사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하숙집을 구하기 어려워 상당 기간 동안 학교 숙직실을 나의 전용 거처로 삼아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전교생들을 차례로 불러 개별면담을 통해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내려 애썼다. 1주일 만에 전교생의 가정 환경, 품성, 재능을 완전히 파악하여 수업시간에 개별 학생 이름을 부르며 각자 수준에 맞은 질문으로 수업에 집중시켰다. 차츰 동료 직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보니, 교감을 비롯한 5인의 직원 중에 정규 사대 출신은 나 밖에 없는데다 평교사 4인 중 두 사람은 상습 도박꾼으로 결근이 잦았다.

 

동료 결근으로 수업 결손이 생기면 내 과목의 보충수업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 좋아하며 교실에 달려 들어가 열정을 쏟았다. 그러자 신규 교사들의 부임기피 학교라는 악명이 붙어있는 그 벽지학교에 모처럼 참신한 국립 사대 출신이 부임하여 학교를 일신시켜놓았다는 평이 학부모들 간에 돌았다. 내가 맡게 된 물상은 특히 자신이 없었지만 그로 인해 학생들이 손해 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물상교재연구를 하느라 밤새우기가 일쑤였다.

 

나의 대학영어과 동기생 중에 나보다 졸업성적이 하위인 한 친구는 자기 형님이 도 교육청장 학사와 친분이 있어 안동중학교에 발령 받아 한 학년 영어만 맡고 있다는 자랑을 듣고부터는 내 속이 뒤집어져 그 벽지학교근무는 1년으로 족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연말에는 탈출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교직 출발 첫 해에 사제 인연을 맺은 학생들에게는 아무 죄가 없으니 원도 한도 없을 만큼 정을 쏟아 ‘흙 속에 묻힌 진주’ 몇은 꼭 찾아놓고 떠나리라 굳게 결심했다. 드디어 학년 말 인사이동 시기가 되어 본교로 찾아가 교장에게 읍소 반 공갈 반으로 대들었다. “교장 선생님! 제가 사대 영어과를 졸업할 때 성적이 최 상위였는데도, 이 열악한 분교에 발령 받아 잡다한 과목을 맡아 1년간 전심전력을 다 쏟았습니다. 저보다 성적이 하위인 영어과 동기생은 안동중학교에 발령 받아 한 학년 영어만 맡으면 된다는 자랑을 듣고부터는 저도 사람인지라 더 이상 여기서 희생하지 못하겠기에 떠날 결심을 했습니다. 이번에 교장선생님께서 내신을 내주지 않으면 저는 공립에서 사표를 내고 대구 시내 사립학교로 뛸 작정입니다.” 그리하여 그 학교를 떠나게 될 때, 정든 학생들이 연 3일 동안 나의 거처인 숙직실로 모여들어 송별연을 베풀어주었건만 나는 독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40년이 지나 내 앞에 나타난 천병모 제자는 7남매 중 끝이라 중졸을 끝으로 농군신세를 면치 못할 줄 짐작했는데,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 중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외대 영어과 2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한 후 통역 장교로 임관되어 화려한 장교 생활을 했다니 ‘흙 속의 진주’가 스스로 흙을 헤치고 나와 세상에 빛을 발한 케이스라는 찬사를 보내주었다. 이에 천병모 제자는 자기는 그런 찬사를 들을 자격이 못 된다며 동석한 동기생 박성택의 이력을 소개했다.

 

듣고 보니 박성택 제자는 과연 흙 속에서 스스로 밖으로 헤쳐 나와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보석이다 싶었다. 그는 9남매 중 여섯째로 중학생 시절에 절량농가인 자기 집 가족부양을 위해 품팔이 일을 다니느라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단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공대 출신인 친척이 운영하는 기계 제조 공장에 견습공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스스로 개발한 네 가지 장점을 가진 밸브 제조 기술로 포엠(Four Merits)엔지니어링 회사를 창립하여 강소기업으로 키우는데 성공했단다. 그는 기업이득으로 고향인 군위군청사업에 기여할 만큼 우뚝 섰다.

 

그 뿐 아니라 해외에도 눈을 돌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우물파주기 사업을 펼칠 만큼 국제적 자선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는 그의 한자 이름 속의 ‘착할 성(聖)’ ‘못 택(澤)’자의 이름값을 하기라도 하듯, 전 가족이 헌혈 운동에 앞장서고 사후 시신 기증 운동 등에 선도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의 덕성을 찬양하는 영시 한 구절을 적어본다.

 

You used to be slow in learning English in schooldays,

because you were so busy helping your poor family out.

You're loved and respected by all the people around you.

Because you have done so much good to the world.

I used to be no more than a teacher in your schooldays.

You are, however, a respectable teacher to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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