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 나의 연하스승 ‘인향(忍香)’ 이기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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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0-12-11 [15:54]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 나의 연하스승 ‘인향(忍香)’ 이기광 변호사 / 사진=이도수 교수 제공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이도수 교수가 연하스승 ‘인향(忍香)’ 이기광 변호사에 대해 쓴 글을 살펴보자.

 

아래는 이 교수가 연하스승 ‘인향(忍香)’ 이기광 변호사에 대해 쓴 글을 옮긴다.

 

 

「울산지방법원장을 끝으로 32년간의 법관생활을 마감하고 대구에서 법무법인 중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기광 변호사는 나보다 14세연하의 제자이지만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인사이다. 제자에게 존경이라는 수식어가 격에 맞느냐라는 핀잔을 더러 듣지만 내가 그에게 지어준 아호 인향(忍香)’을 붙여 인향선생이라 부른다.  

 

혹자는 출세한 제자에게 아부한다고 빈정댈지 모르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에게서는 긴긴 겨울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이른 봄에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처럼 인고(忍苦)의 향기가 풍기기 때문이다. 그가 32년간의 법관생활을 마감한 때인 2018411일자 매일신문의 전면기획 특집기사에서 인간 이기광에 대한 대구법조계의 평 넉넉한 가슴과 고매한 인품의 판사라는 말만 봐도 그에 대한 나의 인물평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시골 군위중학교 2학년 때 내가 영어를 가르치게 된 것이 사제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7-8년쯤 지난 어느 날, 내가 대구시내로 이동해서 근무하고 있는 직장으로 그가 느닷없이 찾아와 진학상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중학생시절에 발랄하던 그의 모습은 간 곳 없고 목발에 의지하여 힘겹게 걷는 어둔한 거동과 수심이 가득한 그의 표정이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자초지종을 들으면서 나는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6형제의 장남인 그에게 기대를 건 부모님이 고등학교진학을 대구로 보내기로 작심하여 대구의 고모댁에 기식시키면서 몇 달치 식량의 운송을 모 화물회사에 위탁했는데 쌀에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농약봉지를 넣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며 울먹이며 얘기했다.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등학생시기에 하반신마비로 실의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겨우 마음을 수습하여 대학진학을 위해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억장이 무너졌다. 선천적장애자나 유아기장애자는 나름대로 적응을 쉽게 하는데 사춘기이후의 장애자는 여간 의지가 강한 사람도 극복이 어렵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그 전해까지 경북고등학교에 근무했는데 거기서 소아마비장애자로 성적이 우수한 내 반의 한 학생에게 영남대학교약대진학을 적극 권유하여 천마장학생으로 합격시켜 전면장학금혜택을 받게 한 예를 얘기해주면서 피할 수 없는 신체적 약점을 고려하여 외지진학을 포기하고 영남대학교 약대 진학을 은근히 권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후로 나는 그를 잊고 지냈는데 그가 영남대학교에 천마장학생으로 합격했는데 약대가 아닌 법과대학으로 진학하여 사법시험준비에 전력투구하여 합격의 영광을 차지했다는 희소식이었다. 그 후 그는 승승장구하여 신체정상인 그 누구에게도 못지않을 만큼의 법관경력을 쌓아 대구고등법원부장판사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그가 대구법조계에서 명망이 높아 대법원판사로 번번이 물망에 올랐음을 신문보도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신체적 제약 때문에 본인이 타지 근무를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인사들은 직업특성상 대체로 인간미가 없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이 사람은 심각한 신체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쾌활함과 너그러움이 몸에 배어있기에 매번 그를 대할 때마다 그 비결에 신비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인고(忍苦)의 세월에서 쌓은 내공의 향기라는 뜻으로 忍香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자 그가 마다않고 받아들였다

 

나의 인생회고록 속에서 피력한 말 내가 11대종손에 8남매 장남이라는 짐에 눌려 향학열을 한껏 발휘 못하다가 대학졸업 후 16년째인 41세에 경남의 모 사립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대학동기생에게 멱살 잡히다시피 끌려가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독일병정처럼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뒤늦게나마 대학교수직에 진출했음에도 대다수교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끄러운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약점호도강박증으로 도사리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강의준비를 그 어느 교수보다 철저히 한 덕택에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평가제도가 실시되었을 때 최선두를 달릴 수 있었고, 거의 매년 책을 펴내어 최다저술기록을 세웠다.”라는 나의 실토에 대해 忍香은 남다른 공감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의 그 반응을 보고 인향이 그 많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정상인들보다 더 성공적인 법조인이 된 것은 나와 대동소이한 약점호도강박증 덕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忍香이 다닌 초중고대학을 통틀어볼 때, 어느 하나도 명문대열에 드는 학교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문학교출신들의 거대엘리트공동체를 이룬 법조계에서 넉넉한 가슴과 너그러운 인품의 법조인이라는 명망을 얻게 된 비결은 아마도 약점호도강박증덕택이 아닐까 싶었다. 忍香은 매일신문인터뷰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제판하는 일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 구약성경 신명기117절의 말씀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하나님)에게 돌려라. 내가 들으리라.”라는 구절을 소개한 것만 봐도 법조인으로서 존경받는 그의 인격의 바탕은 돈독한 기독교신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심증을 굳히게 했다. 이 기광 변호사에 대한 찬양 시 한 구절을 적어본다.    

 

제자 스승 忍香 讚 

 

내 비록 그대보다 먼저 태어났으나

그대가 풍기는 인간향기가 더 진하니

늦게 태어난 그대가 나의 스승이외다.

 

법조인옷자락에서는 찬바람이 인다는데

인향선생의 옷자락에서는 훈기를 풍기니

넉넉한 가슴, 군자도량의 판사라고들 하지요.

 

()처럼 순리대로 세상이 흘러가게()하는 것이

()의 존재이유인데 세상을 역류시키는 소인배들이

인향선생의 군자풍모를 본받으면 만사형통하련만!

  

 

이도수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교사와 국립경상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로 정년퇴직하고 동 대학의 명예교수로 대구와 경남북도 일원의 여러 사회의 교육기관에서 글로벌문화 강의와 함께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서양 문화 기행', '문학과 문화 이야기', '한반도발 레오르네상스', '100일간 인도인으로 살아보기'. '반일로 망할래, 지일로 흥할래?' 등이 있고 특히, 2013년도 한국베스트셀러 교양도서대열에 든 적이 있는 "한반도발 네오르네상스"와 미국 콜럼비아대학 철학과에서 교재로 채택된 적이 있는 영문에세이 "Encountering Eastern & Western Culture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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