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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 존경하는 고향후배 대한수목원 ‘석송(石松) 배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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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용 기자
기사입력 2020-12-08 [13:20]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 존경하는 고향후배 대한수목원 ‘석송(石松) 배만현’ / 사진=대한수목원 홈페이지  © 더뉴스코리아


[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이도수 교수가 고향후배 석송 배만현에 대해 쓴 글을 살펴보자.

 

아래는 이 교수가 존경하는 고향후배 석송 배만현에 대해 쓴 글을 옮긴다.

 

정년퇴직 후,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다가 70대에 들어서서 내가 잘 모르고 지냈던 고향후배 한 사람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스스로 지은 아호 석송(石松)으로 불리는 4년 연하인 그와 나의 공통고향은 대구도심에서 북쪽으로 30리 떨어진 산간오지였다. 우리가 중등학교를 다녔던 60여 년 전, 교육여건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실감나게 하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내가 대구시내중학교에 다닐 때는 매일 산 넘고 강 건너 왕복 60리 등굣길을 걸어 다녀야 했다. 6월 어느 날,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학교에 쓰고 갈 우비가 없어 난감했다. 이때 어머니가 농촌에서 어른들이 비올 때 쓰는 삿갓을 내주면서 이걸 쓰고 가거라.”하셨다. 학생복 차림에 삿갓을 쓰고 가라니 말도 안 된다 싶었지만 어머니 영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거역했다가는 즉각 학교가기 싫으면 가지 마라. 네가 학교 안 가면 학비 안 들어 좋고, 농사일 거들어 좋으니 마음대로 해라!”라는 말로 입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면서 혹시 누가 볼까봐 삿갓을 푹 눌러쓰고 종종걸음으로 마을을 벗어났다. 산갓을 쓰고 대구로 가는 길목인 함지산 10리 고개를 넘으면서 사뭇 부모님 원망만 하면서 터벅터벅 걸었다. 10리 고개를 넘고 나면 공포의 금호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비가 내릴 때는 강에 놓인 나무 뚝 다리도 물에 잠겨 보이지 않고 강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므로 하의를 벗어 책가방에 쑤셔 넣고 책가방이 젖지 않도록 삿갓 밑에 구겨 넣은 채 강의 얕은 곳을 발로 더듬으며 건너야 했다. 강을 건너고 나면 더 큰 걱정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 존경하는 고향후배 대한수목원 ‘석송(石松) 배만현’ / 사진=대한수목원 홈페이지  © 더뉴스코리아

 

학교까지 남은 6km는 대구시내를 통과해야 하는데 대구시내에는 탁발 승 말고는 삿갓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궁리 끝에 삿갓을 대구시내 초입에 있는 참나무진(지금 오봉산 아래 침산동)이라는 마을근처 하수구다리 밑에 숨겨 놓고 비를 맞으며 학교로 걸어갔다. 오후에 돌아오면서 삿갓을 찾으러 다리 밑에 가보니 떠내려가고 없었다. 집에 들어서니 그 비싼 삿갓을 안 챙겨왔다고 어머니가 야단을 치는데도 한 마디 대꾸도 못했다. 대꾸했다가는 내일부터 학교가지 마라!”라는 말을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도 대구시내에는 가정교사를 두는 집이 있었고, 보충학습을 위한 강습소도 여러 곳 있었지만 내나 후배 석송은 도시의 그런 혜택은 꿈에도 꿀 수 없었다. 왕복 24km를 걸어서 학교를 다녀온 후에도 책보를 내던지기 바쁘게 들로 내몰려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래도 거역하지 않고 부모님 영에 순순히 따른 것은 농사군 신세를 면하려면 어떻게든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태도가 체질화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면 죄를 짓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일벌레가 되었다.

 

70대 문턱에 들어선 후배 석송의 모습을 보니 나와 똑같은 일중독자가 되어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석송은 나와 다른 점이 있었다. 학교에 다닌 햇수로 치면 나와 비교가 안 되는데 그가 거둔 인생결실은 내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알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향후배 석송은 대구의 명문사학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산업현장에 뛰어들어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여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청구대학야간부를 졸업하고 조경에 대한 남다른 취미를 살리기 위해 전세계를 다니며 노하우를 터득했다. 40대 후반부터 섬유산업에 기울이던 노력을 줄이고 대구 팔공산 입구에 수목원을 만드는 일에 매달려 27년간 가꾸어왔다. 도시계획상 그린벨트지역이라 개발에 많은 제약을 받아 난관에 부딪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그곳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목원으로 만들어 대한수목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그 옆에 지상낙원이라는 별칭도 붙여두었다.

 

전 세계에서 이름난 수목원은 거의 다 다녀본 내가 보기에는 짜임새나 한국적 정취를 잘 살린 점에서는 국내 어느 수목원에도 못지않다고 생각되었다. 무엇보다도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을 감동시키는 장면은 이 수목원을 이룬 석송 자신이 헙수룩한 작업복을 입고 수목원의 구석구석을 매일 손질하는 모습이다.

 

석송이 27년간 묵묵히 불모지를 다듬어 보물로 만들어온 발자취가 수목원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그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다행히도 그 수목원에서 지척거리에 살고 있으므로 수시로 그곳을 들락거리며 후배의 거룩한 정신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후배 석송을 내 인생스승의 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를 칭송하는 시 한 수를 적어본다.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 존경하는 고향후배 대한수목원 ‘석송(石松) 배만현’ / 사진=대한수목원 홈페이지  © 더뉴스코리아

 

<연하스승 석송(石松)>

 

내가 삼베잠방이 입고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석송은 런닝셔츠 원피스로 고추 가리고 다녔지.

내가 혀와 분필로 누군가를 가르칠 때

석송은 손과 마음으로 누군가를 가르쳤지.

 

이제 늙은 나에게 글 배우려오는 이가 없는데

석송에게 지혜를 배우려오는 이는 나날이 늘어가니

후배 석송이 어느새 인생선배가 되었구려

사랑하오, 존경하오, 고향후배, 인생선배 석송

 

석송은 자기가 다닌 고향 초등 및 중학교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어 기부천사로 알려져 있고, 민족사학 대륜고의 총동창회장을 맡아 통 큰 기여를 한 때문에 동창회 대부로 통한다. 2018412KBS 1TV에서 팔공산 명소소개를 하는 프로에서 대한수목원소개가 약 15분 있었다. 이곳 풍광은 석송(石松)’이라는 그의 아호에 어울리게 바위와 소나무가 잘 조화를 이루도록 조경이 되어있다. 힐링명소 대한수목원의 위치는 대구시 동구 중대동 301-3. Tel: 053-983-8080 )이다.」   

 

이도수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교사와 국립경상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로 정년퇴직하고 동 대학의 명예교수로 대구와 경남북도 일원의 여러 사회의 교육기관에서 글로벌문화 강의와 함께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서양 문화 기행', '문학과 문화 이야기', '한반도발 레오르네상스', '100일간 인도인으로 살아보기'. '반일로 망할래, 지일로 흥할래?' 등이 있고 특히, 2013년도 한국베스트셀러 교양도서대열에 든 적이 있는 "한반도발 네오르네상스"와 미국 콜럼비아대학 철학과에서 교재로 채택된 적이 있는 영문에세이 "Encountering Eastern & Western Culture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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